언젠가 들었던 공포 이야기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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또먹었어요 2025. 6. 8. 09:09

눈을 떴을 때, 시계는 오전 7시 00분이었다.
핸드폰엔 어제 보낸 카톡 그대로.
식탁엔 내가 어젯밤에 먹다 남긴 컵라면이, 그 상태 그대로 있었다.

문제는 그게 ‘오늘 아침’이라는 것이다.
내가 이미 겪은 하루가,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반복되고 있었다.

처음엔 악몽인 줄 알았다.
하지만 그 다음 날도, 또 그 다음 날도 아침 7시로 돌아왔다.
시간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.
세상은 같은 하루를 복사해, 나에게 덮어씌우고 있었다.

이상한 건 그뿐이 아니었다.
3번째 반복일 때, 회사 복사기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.
5번째엔 사무실 벽에 걸려 있던 액자 그림이 바뀌었다.
9번째엔 내 상사가 얼굴은 같은데 말투가 달라졌다.

나는 메모장을 꺼내 반복된 내용을 기록하기 시작했다.
루프가 거듭될수록 주변은 점점 내가 알던 세계가 아니게 되었다.
누군가 이 세계를 조금씩 수정하고 있다는 느낌.
그리고 나만 이걸 ‘기억’하고 있었다.

오늘 아침, 메모장을 펼쳤다.
내 글씨 아래에 낯선 필체가 있었다.

“이제 멈춰. 우리가 널 몇 번이나 지웠는데 또 기억해?”

그 문장을 본 순간, 핸드폰이 꺼졌고, 모든 전자기기가 동시에 정지했다.
주변은 말소된 화면처럼 조용했다.
방 안에는 나 혼자였고, 창밖엔 하얀 안개가 가득했다.
그 안에서,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.

이번엔, 내가 버전에서 제외된 것 같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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